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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클란 도넬란의 [십이야]를 보고 뒤늦게...
 시월말에 LG 아트센터에서 Cheek by Jowl 극단의 러시아 남자배우들만으로 공연하는 <십이야>를 보다. 데클란 도넬란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퍼포먼스 역사를 다룬 웬만한 책에서는 모조리 이름을 찾을 수 있는 유명한 감독으로, 특히 <허슬>의 에이드리언 레스터, <캠브리지 스파이즈>, <아내와 딸들>, <고스포드 파크>의 톰 홀랜더가 함께 공연했던 남자배우만의 <뜻대로 하세요 As You Like It>는 전설적인 공연이다. 데클란 도넬란은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아시 매튜 맥페디언과 함께 했던 <헛소동>을 비롯해 무수한 셰익스피어극과 르네상스극을 파격적으로 해석해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명성이 높기에 오래 전부터 두근거리며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공연은 내게 있어 셰익스피어 희극의 본질에 대해 정말이지 새로운 시각을 던져 주었다. 과연 셰익스피어의 희극들처럼 순전히 리비도적인 내러티브가 다시 있을까, 하는 실감. <십이야>는 무수한 셰익스피어의 희극들이 그러하듯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어떤 고유한 개인을 향한 근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 전방위로 걸쳐 뻗어가는 편재하는 리비도의 흐름 , 그 힘과 그 아름다움과 그 긴장과 그 허무함과 그 뒤에 남는 서글픔 그 모든 것에 대한 입체적인 서사였다. 궁극적인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남녀쌍동이들이, 젠더와 계급을 가로지르며 일리리아라는 몽상적인 멜랑콜리의 왕국을 휘젓는 이 정신없는 한바탕 난장은 조명과 몇 가지 소품만을 이용한 미니멀한 무대를 그야말로 환상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특히 남녀 캐릭터 모두를 셰익스피어 당대처럼 모두 남자배우로 기용한 데클란 도넬란의 연출은, 각 배우와 "캐릭터"의 고유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몰개성적으로 흘러가는 이 리비도의 전방위적인 편재성을 강조하는데 대단히 효과적이다. 이 공연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개별 배우 고유의 매력에 정말로 최소한으로 기댄 연출과 연기였는데, 뭐랄까, 나이와 체격 조건이라든가 하는 뚜렷한 특징만 제외한다면 모든 배우가 모든 캐릭터를 대체해 연기할 수 있다는 느낌이랄까. 말하자면 올리비아를 연기한 배우가 비올라를, 세바스찬이 비올라를, 혹은 공작이 앤드루 경을, 안토니오가 페스카를, 혹은 마리아가 올리비아를 연기하는 것이 충분히 상상이 간다는 말이다. 사실 내게 이 공연의 특수성은 바로 그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캐릭터들의 궁극적 차이라는 게, 외모라든가 어떤 내면적 특성이라든가 하는 고유의 본질적 특성이 아니라, 세세한 버릇과 대사, 디테일한 행위와 철저하게 안무된 움직임, 눈빛의 움직임이랄까 하는 비본질적인 '차이'에 존재한다는  느낌이었던 거다. 처음 똑같은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아무런 분장 없이 다 같이 등장한 배우들은 정말로 서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자마자 이 모든 캐스트가 다 같이 외치는 '아버지'는, 그들 모두의 아버지고, 그들의 원류는 결국 하나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머리"의 청년에게 머리띠를 둘러주고 치마를 입히는 순간, 그 청년은 아름답고 우아하고 퇴폐적인 귀족 처녀 올리비아로 순식간에 변신한다. 건장한 사내들은 아주머니가 되고, 시종이 되고, 남자의 역할을 하는 여자가 된다. 아들과 딸의 차이, 혹은 귀족 아가씨와 하녀의 차이, 멍청한 구애자와 공작의 차이는 머리카락을 방정맞게 넘기는 손길, 쭉 편 어깨와 허리, 느릿느릿한 목소리, 호들갑스러운 말투...그런 것들로 규정된다. 굳이 목소리도 여자처럼 내지 않고 담담하게 대사를 치는 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계급과 젠더라는 '본질적' 차이는 이러한 '퍼포먼스'를 통해 철저히 비본질적인 것이라는 실감이 덮친다. 더구나 러시아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 대사들 역시 '차이를 횡단'하는 이 멋진 퍼포먼스와 참으로 어울렸고.


결국 <십이야>에 반한 나머지 데클란 도넬란의 책 The Actor and the Target을 사서 읽고 있던 중인데, 메소드 액팅 스쿨과는 철저히 다른 입장을 취하는 도넬란의 연기론을 보니 내 느낌이 그리 빗나가지는 않았구나, 싶다. 도넬란은 배우가 "내면"의 무언가를 끌어내서 연기하려는 생각은 철저한 오류라고 치부한다. 연기하는 매 순간 순간 지극히 구체적인 외부의 타겟을 설정해놓고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면"은 끌어올려지지도 않거니와 구체적인 표현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연기를 잘 하려면 철저히 인물의 '내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스타니슬라프 식의 관점과는 철저히 다른 이야기인데, 그 결과 예를 들어 말론 브란도의 영화들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말하자면 말론 브란도와 같은 배우들은 그 '대체 불가능성'에 의존하지만, 데클란 도넬란의 배우들은 올바른 훈련과 연기를 한다면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그 때 그 때의 디테일한 상황의 완벽한 연출일 뿐. 이런 점에서 <십이야>는 분명 '데클란 도넬란'이라는 연출가의 작품이 되는 셈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넬란의 스타일은 셰익스피어의 희극과는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절대로 유일무이한 캐릭터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사방에 피터팬이 뿌린 요정가루처럼 편재하며 사람을 슬프게 하고,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사람이 사람을 쫓게 만들고, 사람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웃게 만들고, 또 노래하게 만드는 리비도, 욕망, 혹은, 그렇다, 어쩌면 그걸 사랑이라 한다면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올라가 세바스찬으로 바뀌었는데도 행복해하는 올리비아와, 충복 세자리오가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구혼의 손길을 내미는 공작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셰익스피어 자신 그다지 캐릭터의 고유한 내면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하고. 기이하게 텅빈 내면의 캐릭터들은 생생한 욕망의 실존으로 살아 숨쉬니까. 그 생생하게 실존하는 욕망이 배우들의 온몸과 목소리, 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꿈틀꿈틀거리면서 서사를 카니발처럼 화려한 주이상스의 향연으로 만들어 버리고.  

차이의 환각을 기가 탁 막힐 정도의 섬세한 흉내로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차이 그 자체의 비본질성을 각인하는 연출은 지극히 21세기적 감수성에 잘 맞아떨어지는 동시에 셰익스피어 희곡의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는 힘이 있는데, 이런 연출은  말볼리오의 플롯을 다루는 장인다운 솜씨에서도 드러난다. 16세기라면 감히 넘을 수 없는 신분의 장벽을 넘어 과도한 욕심을 부린 허세 많고 꼴불견의 죄인으로 그려졌을 말볼리오는, 오로지 즐거운 이야기를 창조하기 위한 일군의 광대들, 즉 플롯메이커에 의해 오로지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조종당한 캐릭터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관객을 똑바로 바라보며 "복수하고 말겠다!"고 말하던 마지막 말볼리오의 엔딩은, 결국 다시 늘 관객을 향해 박수를 구걸하거나 용서를 구하던 셰익스피어의 에필로그들과 조각퍼즐처럼 기가 막히게 들어맞아 버린다. 가장 메타적이고 동시대적이면서도 가장 셰익스피어적인 이 엔딩이란. 결국 이 모든 한 판의 꿈같은 난장은, 오로지 관객을 위해 "스테이징"된 헛소동에 불과하니까. 잊을 수 없는 말볼리오의 쩌렁거리는 대사와 씨익, 하는 그 웃음의 의미심장함이란. 

       
그나저나, <필로우맨>, <라만차의 사나이>, <스위니 토드>에 데클란 도넬란의 올메일 캐스트 <십이야>로 이어지는 환상의 라인업이라니 - <뷰티풀 게임>, 기다려! - 올해 하반기를 이렇게 풍성하게 만들어 준 LG 아트센터 기획팀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박근형의 <필로우맨>과 데클란 도넬란의 <십이야>는 정말이지 뉴욕 런던 서울을 통틀어 볼 수 있었던 무수한 공연들 중에서도 너끈히 베스트를 차지하는 만큼. 눈앞에서 호흡해주며 나를 위해 기꺼이 향연을 펼쳐주었던, 셰익스피어의 발칙하고 아름답고 생생한 언어 - 그 어떤 나라 언어로 되어 있든 힘을 잃지 않았던 - 와 한 호흡 한 박자도 놓치지 않고 맞물려 돌아가던 완벽한 <Cheek by Jowl>극단의 러시아 캐스트들에게 감사를 또 감사를. 브라바, 브라바, 브라바!! 

내 생애 다시 한번 데클란 도넬란의 셰익스피어를 볼 수 있기를 빌고 또 빌며. 런던의 씨어터 뮤지엄 아카이브에 있다는 에이드리언 레스터의 <뜻대로 하세요>와 매튜 맥페디언의 <헛소동>을 꼭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며. 잊지 않으려고 여기, 이 자리에 적어넣는 한 꼭지, 이제 끝.  


매튜 맥페디언이 출연한 <헛소동>의 한 장면


남녀 공히 심장이 두방망이질치게 만들었다던, 전설적인 에이드리언 레스터의 로절린드
데클란 도넬란의 98년작 <뜻대로 하세요> 중에서


"The extraordinary thing about Adrian Lester was that, with his beautiful voice and grace of movement, when he played the female Rosalind playing at being the male Ganymede he seemed more like a woman playing a man than a man playing a woman. And when he played at Rosalind playing Ganymede playing Roalind, one simply gave up trying to work out in one's mind whether one thought he was a woman playing a man playing a woman or a man playing a woman playing a man playing a woman."

- Jonathan Bates, <The Oxford Illustrated History of Shakespeare on Stage>
# by 문유 | 2007/11/26 23:39 | 플러스 알파 | 트랙백 | 핑백(1) | 덧글(13)